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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업적 목민심서 거중기



조선의 유명한 발명가이자 거장인 정약용.


이번엔 이 다산 정약용 대하여 발명품 등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정약용에 대해 알려면


정약용 생애에 대하여 간략하게


알아보아야 합니다.


정약용은 어릴때부터 남들과


다름을 보였다고 하는대 소위


말하는 천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록에 의하면 4살때 천자문을


다 익혔으며 7살에는 한시를 써냈고


10살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써냈던 시를



모아서 시집을 냈다고 하니 같은


나이의 또래보다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릴때부터 이러한 천재성을 드러낸


정약용은 결국 20대에 문과에서


급제를 하게 되어 관직으로 향하게 됩니다.



관직에서 세월을 보내며 결국 정조대왕의


죽음과 더불어 천주교사건에 얽메이게 


되는대 이로 인해 무려 18년이라는


긴 유배형을 받게 되어 오랜


세월동안 유배지로 향합니다.



이 유배지에서의 일생이 정약용이 지어낸


가장 뛰어난책 목민심서로 드러나게


되는대 결국 유배형이 끝난


57세에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되어었으며 이 유배생활을



마치고 난 뒤에도 실학사상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향년 75세에


세상을 뜨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정약용이 남긴 업적을


상세하게 다뤄보겠습니다.


일단 정약용은 조선에서 실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여 '다산학' 학문을 


완성시켰는대 그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대단하다고 봅니다.


또한 여러 책들을 저술하였는대


대표적으로 알려진 목민심서 이외에도


흠흠신서,경세유표 등이 있습니다.



경세유표는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한 책이며


흠슴신서는 재판에 관련된 내용의 책으로


형법을 주로 다룬 저서라고 합니다.



그당시 마과회통이라고 불린 홍역에


대하여 다룬 의학서도 연구했는대 이


의학서로 의하여 그당시 유행했던


마진의 치료법이 탄생하였습니다.



또한 정조대왕의 명으로 인해 그당시


한강에서 다리를 건설했으며 수원에


짓고 있는 수원화성의 건축을 좀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거중기를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명언을 남긴 정약용.


특히 정약용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여기에


수많은 명언들이 들어가있습니다.


보리타작, 견여탄, 자찬묘지명,경세유표 하피첩


배다리 정해인 애절양 생애 이많큼 업적을 남겼지요.


이상 정약용의 업적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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